
계간 '시인세계'가 시인 109명에게 '나를 전율시킨 최고의 시구'를 질문한 결과 가장
많이 언급된 시인은 김수영(1921~1968)이었다.
다음은 서정주(1915~2000), 정지용, 이상, 백석의 시를 들었다.
여기 차례로 해당 시 전문을 옮겨본다.
고딕으로 표시된 구절이 해당 시구다.
꽃잎2
김수영
꽃을 주세요 우리의 고뇌를 위해서
꽃을 주세요 뜻밖의 일을 위해서
꽃을 주세요 아까와는 다른 시간을 위해서
노란 꽃을 주세요 금이 간 꽃을
노란 꽃을 주세요 하얘져가는 꽃을
노란 꽃을 주세요 넓어져가는 소란을
노란 꽃을 받으세요 원수를 지우기 위해서
노란 꽃을 받으세요 우리가 아닌 것을 위해서
노란 꽃을 받으세요 거룩한 우연을 위해서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 버리세요
꽃의 글자가 비뚤어지지 않게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 버리세요
꽃의 소음이 바로 들어오게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 버리세요
꽃의 글자가 다시 비뚤어지게
내 말을 믿으세요 노란 꽃을
못 보는 글자를 믿으세요 노란 꽃을
떨리는 글자를 믿으세요 노란 꽃을}
영원히 떨리면서 빼먹은 모든 꽃잎을 믿으세요
보기 싫은 노란 꽃을
"내가 초극해야 할 또 다른 절망이며 詩作에 가해야 할 박차"<시인 천양희>
내 冬天
서정주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놓고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벼락으로 다가왔다."<시인 정진규>
백록담
정지용
2
엄고란(嚴古蘭), 환약같이 어여쁜 열매로 목을 축이고 살어 일어섰다.
3
백화(白樺)옆에서 백화가 촉루가 되기까지 산다. 내가 죽어 백화처럼 흴 것이 숭없지 않다.
4
귀신도 쓸쓸하여 살지 않는 한모롱이, 도체비꽃이 낮에도 혼자 무서워 파랗게 질린다.
5
바야흐로 해발 육천척 우에서 마소가 사람을 대수롭게아니여기고 산다. 말이 말끼리 소가 소끼리, 망아지가어미소를 송아지가 어미말을 따르다가 이내 헤어진다.
"아름다움이란 무서움의 시작"<허만하>
아침
이상
캄캄한공기를마시면폐에해롭다. 폐벽에끌음이앉는다. 밤새도록나는몸살을앓는다. 밤은참많기도하더라. 실어내가기도하고실어들여오기도하고하다가잊어버리고새벽이된다 .폐에도아침이켜진다. 밤사이에무엇이없어졌나살펴본다. 습관이도로와있다. 다만내치사한책이여러장찢겼다. 초췌한결론위에아침햇살이자세히적힌다. 영원히그코없는밤은오지않을듯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 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내가 너를 사랑해서 이 우주에 눈이 내린다니"<시인 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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